유럽에서 코칭을 배운 내가 단순 반복 훈련에 빠진 이유

유럽에서 코칭을 배운 내가

단순 반복 훈련에 빠진 이유

 

축구의 훈련방법은 크게 2가지입니다. 하나는 유럽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로 뻗어나간 트레이닝 훈련법, 또 하나는 고전적인 단순반복 형태의 플랙티스 훈련법. 그래서 같은 패스를 훈련하더라도 트레이닝 또는 플랙티스 2가지 방법으로 훈련할 수 있습니다.

 

호주에서 처음 지도자를 시작했고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코칭교육을 받은 저로서는 트레이닝 방법이 당연히 우월하다고 믿었습니다. 트레이닝 훈련법을 통해 기술과 전술을 익혀야 실전에 활용할 수 있고 통찰력과 창의력 그리고 상황판단 능력이 향상되기 때문입니다.

 

반면 단순반복 형태의 플랙티스 훈련은 기술적으론 빨리 성장하지만 그것을 경기에 반드시 적용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고 경기운영에 대한 학습도 거의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도 트레이닝 훈련법을 주로 사용했었습니다. 손흥민 선수가 등장하기 전까지는요. 

 

손흥민 선수는 그의 아버지로부터 육민관중학교에 가기 전까지 전형적인 플랙티스 방법으로 축구를 배웠습니다. 책이나 다큐에 나온 손웅정씨의 훈련법을 보면 추측 가능한데 기본기를 중시하는 아버지 밑에서 어느 팀에도 소속되지 않고 집중적으로 개인교습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해리케인이나 이강인 같이 게임을 읽고 유연하게 풀어가는 능력보다는(해리케인은 스트라이커임에도 불구하고 플레이 메이커로서의 자질도 충분하죠) 골 결정력과 스피드 같은 개인적인 능력이 훨씬 뛰어납니다. 그런 능력이 너무도 뛰어나 다른 단점들이 묻힐 정도이고, 2020-2021 시즌 EPL 득점왕을 하며 월드클래스 반열에 올랐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냐면 트레이닝 훈련법이 아닌 플랙티스 훈련법으로도 이렇게 뛰어난 선수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물론 손흥민 선수도 중학생이 되며 팀 훈련에 합류했지만 결국 손흥민 선수를 탄생시킨 7할은 아버지와 오랜 세월 함께 했던 단순반복 훈련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게다가 우리 모두는 학습능력이 있기 때문에 조금 늦더라도 꾸준한 경기 경험을 통해 경기 운영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마치 초보운전 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시야가 확장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제 국내 상황에 대입해 보겠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국내에서 트레이닝 훈련법을 완전히 이해하는 지도자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저도 잘 모릅니다) 이유는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트레이닝 훈련법을 가르치는 곳이 없고 가끔 있는 보수교육이나 세미나에서는 심도 있고 꾸준한 트레이닝 훈련법을 배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유럽 또는 국내 프로 유스팀에 속해 그 곳의 커리큘럼에 따라 실무에 꾸준히 적용해 보거나(물론 전문가의 피드백은 필수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훈련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알 수 없으니까요) 트레이닝 훈련의 이론을 공부하고, 본인팀에서 오랜기간 활용해 보지 않는 이상 진정한 트레이닝 훈련법은 체득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은 손흥민 선수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좋은 지도자를 만나 제대로된 트레이닝 훈련법으로 축구를 배우고 있다면 '베스트' 겠지만 상황이 안된다면 손흥민 선수와 같이 플랙티스 방법을 '주'로 하여 완벽히 기술을 익힌 후, 경기운영을 배우는 플랜 B를 가동하면 됩니다. 미션을 하나씩 클리어하듯 축구에 필요한 요소들을 개별적으로 마스터하는 것입니다.   

 

트레이닝 훈련법에 빠져 플랙티스 훈련을 경멸 시 했던 저는 우연찮은 계기로 국내에서 가장 단순반복을 많이 하는 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굉장히 아이러니하죠. 드리블 훈련의 비중이 80% 이상 되는, 드리블로는 꽤나 유명한 팀이었는데 처음엔 부정적인 생각만 들었습니다. 훈련의 커리큘럼이 너무 단순했거든요. 하지만 있다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 손웅정씨와 같은 교육철학을 가지고 있는 팀이었고 차이점이라면 기술 중 유독 드리블에 집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슈팅도 패스도 가르치지 않고 볼이 발에 완전히 붙을 때까지 드리블만 시켰습니다. 저는 매우 궁금했습니다. 이런 훈련을 오랜 기간 받는다면 어떤 유형의 또 어떤 수준의 선수가 나올까? 그 때가 2015년이라 그 때 만난 많은 선수들을 지금까지 꾸준히 모니터링 했고 이제 모두 성인이 되었기에 저만의 데이터가 쌓였습니다.  

 

플랙티스와 트레이닝 훈련비율의 다른 예

 

그들은 모두 메시가 되었을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아닙니다. 중도에 축구를 포기한 아이도 있고 프로에 간 아이도, 대학에서 작은 희망을 붙잡고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아이도 있습니다. 하지만 공통된 것은 볼을 다루는 기술만큼은 국내 최고라는 것입니다. 축구가 기술만으로 되는 것은 아닌지라 모든 선수가 원하는 곳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어설픈 트레이닝 훈련법으로 축구를 배웠다면 지금의 수준보다 한 참 못 미치는 실력이 됐을겁니다. 오히려 극단적인 플랙티스 훈련을 참고 견뎠기에 자신의 맥시멈에 준하는 지금의 실력을 만들었습니다. 

 

플랙티스 훈련법을 이렇게까지 사용해보지 않은 유럽에서는 그 마지막 결과를 잘 모를 수도 있습니다.(그것을 확인하려면 굉장히 긴 프로젝트가 될 테니까요) 오히려 이 모든 것을 지켜본 제가 트레이닝 훈련과 플랙티스 훈련의 차이와 효과를 더 잘 알 수도 있겠지요. 영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올 때 '한국에서는 배울 게 없어'라고 생각했던 오만방자한 초짜코치가 정말 중요한 걸 배우게 된 것입니다. 덕분에 유럽의 훈련 커리큘럼과 그 본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정관념을 갖지 않고 항상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새로운 것이 보인다는 것도 깨달았죠. 이것이 제가 플랙티스 훈련법에 빠진 이유입니다. 

 

 

* 제가 두서없이 쓰긴 했지만 트레이닝 훈련법과 플래티스 훈련법 중 어느 것이 좋다는 글은 아닙니다. 단지 유럽에서 축구의 요소를 제외한 단순반복 훈련은, 콘만 놓을 줄 알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훈련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축구의 요소(볼, 경기장, 규칙, 골대, 우리팀 선수, 상대팀 선수 등)를 생각하고 훈련의 주제, 선수의 배치, 규칙, 난이도를 설정하는 등 축구를 잘 아는 지도자만이 할 수 있는 트레이닝 훈련법을 더 고차원이라 여깁니다. 저도 한 때 그렇게 생각했지만 손흥민 선수의 예나 한국에서의 경험을 통해 고정관념을 깰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참조 : 네덜란드 토털사커 축구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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