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계획이 계획

무계획이 계획

 

내가 세웠던 수많은 계획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돌아보면 그중 달성된 것은 거의 없다. 이쯤 되면 무계획이 계획이지 않을까 싶다. 

 

계획을 세우고 계획을 이루기 위해  단계를 설정하고 그 단계에서 일어날 모든 일들을 예상한다. 그리고 어떠한 변수도 생기지 않게 점검하고 또 점검한다. 마지막으로 운까지 통제한다. 하지만 그렇게 계획을 어긋나게 할 모든 요소를 완전히 제거하여, 일이 안 될 수가 없게 만들어도 결국 모든 것이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나비효과처럼 어느 곳에서 일어난, 보이지 않는 작은 사건이 나에게 올 때쯤 태풍을 일으켜 계획을 비틀어 놓는다. 

 

계획대로라면 나는 지금쯤 아시안 최초의 EPL 감독이 되어있어야 하거나 최소한 영국 축구계 어딘가에 발을 들여놨어야한다.(처음부터 불가능한 꿈이었을 수도 있다 ) 하지만 지금의 나는 여전히 풀럼 연습구장을 기웃거리다가 쫓겨난 2012년의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왜일까? 영리하려면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수준으로 똑똑하거나, 자신이 아둔하다는 것을 깨닫고 우직하게 참고 버티는 능력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40대에 들어서면서 인생의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 게 가장 좋을지 생각하곤 한다. 과거의 나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며 살았다. 내 삶은 꿈을 이루는 것만이 의미가 있었고 선물같은 하루하루를 느끼기 보단 목표를 이루는데만 집중했다. 그리고 그렇게 희생된 현재는 미래의 성공이 보상해 줄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목표에 근처도 가지 못한 지금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시간을 낭비한 것인가? 아니면 이것도 내 삶의 일부인가?

 

예전에 일하던 곳에서 쓰레기같은 업자를 만나 돈도 받지 못하고 고생만 한 적이 있다. 그 때 그가 한 말의 대부분이 쓸모없는 얘기였지만 한 가지 잊혀지지 않는 말이 있다. 하루하루가 모여서 인생이 되는거라고. 그 쓰레기의 눈에도 내가 목표를 이루는데만 혈안이 되어 인생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으로 비췄나 보다.     

 

내가 처음 세계적인 축구 지도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2007년이었다. 이후로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났는데 그 중 가장 큰 변화는 인생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꿈을 이루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 노력들이 현재의 시간과 행복을 너무 많이 잡아먹지 않도록 끊임없이 주의해야 한다는 것도.

 

보이지는 않지만 세상엔 순리라는 것이 존재하므로 계획적인 것만큼 차례를 기다리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이제 나는 크고 작은 경험을 통해 기다리는 것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나이는 아무런 노력없이도 얻어지지만 놀랍게도 매년 무언가와 함께 온다.

 

무계획이 계획이라는 말처럼 거창한 계획 없이도 현재를 충실하고 행복하게 살다보면 어느 새 내가 원하는 곳에 닿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계획이 실패한 나에게 순리가 도와줄 차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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