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만은 피터팬

마음만은 피터팬

 

어릴 때부터 나는 늙지 않을 것 같은 묘한 자신감이 있었다.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탓도 있지만 나보다 빠른 속도로 아저씨가 되어가는 친구들을 보며 역시 난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정수리 쪽 머리가 얇아지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거의 없을 정도로 탈모가 심해졌다. 집안조사를 통해 친가, 외가 쪽 모두 대머리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는데 그렇다면 내가 집안 최초 탈모인인 것이다.

 

여자가 싫어하는 남자 외모 순위 중 1위가 탈모, 5위가 키 작은 남자라는데, 둘 다 해당되는 나로서는 2관왕이다..... 뭐 좋지 않은 소식이긴 하지만 가장 닮고 싶은 축구감독이 펩 과르디올라 감독이니 이 참에 헤어 스타일을 바꾸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머리카락이 사라지고 있어도 할 일은 해야 하니까 이틀에 한 번 꼴로 드리블 연습을 했다. 총 120여 가지의 드리블 패턴을 원래 알고는 있었지만 내 몸으로 완전히 터득하고 싶었다. 그리고 산발적으로 나열돼 있던 기술들을 발바닥 드리블과 인사이드/아웃사이드 드리블, 이렇게 2종류로 재정립했다. 코로나 이후 학교 운동장을 잘 개방하지 않아 동네 야구장 구석에서 시작했는데 야구를 배우는 아이들을 제외하면 인적도 드물고 바로 앞에는 한강, 저 멀리는 북한산도 보이는 천혜의 환경이었다.(특히 야구하는 아이들마저 떠나면 고음연습도 가능할 정도의 숨은 핫스팟이다) 

 

그렇게 천혜의 환경 속에서 몇 달을 하다 보니 점점 욕심이 생겼다. 처음엔 시범 보일 정도의 몸만 만들자는 계획이었지만 빠른 속도로 하지 못하거나 폼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묘하게 짜증이 났다. 이 나이에 드리블 연습을 가지고 이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도 신기했지만 점점 실력이 느는 나 자신도 기특했다. 특히 이 훈련이 축구하는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아는 산 증인으로서 레슨으로나마 이 기술들을 아이들에게 전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즐거웠다.

 

20명의 필드 플레이어 중 나 혼자 손으로 볼을 들고 뛰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그것이 내가 최대한 근접하게 만들고 싶은 기술적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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