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교수법 : 교사가 학생을 가르칠 때, 교육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취해지는 수단 

 

얼마 전 재방송된 방구석 1열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위플래쉬를 보게 되었다. 내용은 이렇다.

영화의 주인공 앤드류는 뉴욕의 명문 셰이퍼 음악학교의 스튜디오 밴드에 들어가게 되고 거기서 '플레쳐' 교수를 만난다. 그의 교수법은 학대, 폭언과 폭력을 통해 학생들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식인데 그에 대한 분노를 음악에 대한 열정과 자신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에너지로 쓰라는 것이다. 

 

사진 출처 : JTBC 방구석 1열

 

프로그램을 쭉 보다보니 예전에 책에서 읽었던 일본 여자배구 감독 다이마쓰 히로부미가 생각났다. 그는 혹사 수준의 스파르타 훈련으로 섬유방적공단의 여직원들을 세계최고의 선수들(동양의 마녀들이라 불린)로 만든 장본인이다. 그 훈련이 얼마나 혹독했으면 일본 여성 협회조차 그를 일본 여성 최대의 적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를 미워해라, 나에 대한 증오를 훈련의 에너지로 써라.'라는 그의 말은 플레쳐 교수의 교육철학과 꽤나 닮아있다. 결과가 비정상적인 수단을 충분히 정당화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결국 그들은 마지막 장면에서 그간에 있었던 극한의 과정들을 뒤로하고 음악인으로서의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게된다. 사적인 감정들을 완전히 배제한, 음악에 미친 광기와 광기가 만나 최고의 연주를 들려준 것이다.

 

축구 지도자로서 이 영화를 통해 교수법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봤다. 여러 방법들이 있겠지만 변영주 감독은 플레쳐 교수에게 다소 비판적이었던 반면 가수 장기하씨는 뮤지션인지라 그들의 음악에 대한 광기를 조금은 이해하는 느낌이었다. 다시 말해 변영주 감독에게 플레쳐 교수의 방법은 통하지 않겠지만 장기하씨는 자신을 최고의 드러머로 만들어만 준다면 플레쳐 교수의 혹독한 가르침도 받아들이고 견디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이것은 영화이고 현재 유소년 축구를 지도하고 있는 나에게 당장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냐는 명제로 볼 때 언젠가 고민해 봐야 할 문제이긴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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