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벽이 높지 않은 이유
- 유소년축구
- 2024. 1. 9. 19:32
세계의 벽이 높지 않은 이유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고정관념'이라는 것이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은 EPL이란 말을 들었을 때 무슨 생각이 드시나요?
English Premier League. EPL은 전 세계의 축구 지도자와 선수가 모여 있는 가장 치열한 리그이자 모든 축구선수가 뛰고 싶어하는 꿈의 무대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손흥민, 황의찬, 황의조, 김지수 선수까지 총 4명의 선수가 뛰고 있죠. 여기서 EPL에 진출한 선수들의 국적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현재 어느 나라 선수들이 가장 많이 EPL에서 뛰고 있을까요?
자국선수인 잉글랜드가 당연히 224명으로 가장 많고 브라질(34명), 프랑스(25명)가 다음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 의외인 것은 바로 옆 나라인 아일랜드가 24명으로 스페인, 네덜란드, 포루투갈, 벨기에 심지어 아르헨티나보다 많은 선수를 EPL에 진출시켰다는 겁니다. 아일랜드가 축구 강국인 것은 다소 생소한데요.
아일랜드의 피파랭킹을 확인해보니 60위입니다. 피파랭킹의 신뢰도를 떠나 아일랜드에서도 지도자 생활을 한 저로서는 아일랜드가 우리보다 몇 수 아래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우리보다 6배 많은 선수들을 세계최고의 무대에 진출시켰을까요?
제가 내린 결론은 그들이 영국인들과 같은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고 있고 축구스타일도 비슷하여 적응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는 것, 또 바로 옆에 있다 보니 EPL관계자들에게 노출될 기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영국 프로팀에서 일하는 아일랜드 국적의 스카우터들은 리그 경기나 컵 대회에 찾아와 가능성이 있는 선수를 관찰하곤 합니다. 그렇게 '픽'된 선수들은 바로 영국으로 넘어가 다수의 프로팀 테스트를 연이어 받습니다. 제가 U17코치로 있을 때 U12의 선수였던 트로이 패럿도 그런 케이스인데요. 미리 토트넘 테스트에 합격한 상태에서 만 16세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 영국으로 넘어갔습니다.(그 전에 가려면 보호자가 반드시 동반해야 합니다. 브렉시트가 된 지금은 잘 모르겠네요^^;)
* 그렇다고 무작정 아일랜드로 가지는 마세요. 여기서 잘해야 거기서도 잘합니다^^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면 개인 능력도, 팀 능력도 아일랜드에 뒤지지 않는 우리가 꿈과 목표를 좀 더 높이 가졌으면 해서입니다. 어쩌면 충분한 실력이 있어도 언어, 문화, 축구스타일, 물리적인 거리, 기회의 빈도 때문에 과소평가 되고 있는지도 모르니까요. 또 한가지 호재는 EPL 진출 문턱이 전보다 낮아졌다는 겁니다. 국가대표 선수들도 받기 힘들었던 영국의 워킹퍼밋(노동허가)을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만들었는데 이는 실력만 있으면 다른 리그를 빙빙 돌거나 국가대표 경기의 75%이상을 뛰지 않아도 EPL에 다이렉트로 갈 수 있게 된 굉장히 좋은 기회입니다.
물론 EPL에 가는 것이 절대 쉬운 것은 아닙니다. 영국에서는 프리미어리거를 150만 명 중 180명만이 이룰 수 있는 불가능한 꿈이라고 말할 정도니까요. 또 EPL 선수들을 많이 진출시킨 아일랜드도 정작 출전시간은 6.611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은(4명밖에 없는 우리보다 겨우 2배 많은 시간이죠) EPL에 가는 것 못지 않게 내부경쟁도 치열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럼 객관적으로 볼 때 해외의 뛰어난 선수들과 국내 선수들과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왜 누구는 EPL에 가고 누구는 그렇지 못할까요? 아래는 얼마 전 월드컵을 끝낸 U-17 대표팀 변성환 감독의 대회 리뷰입니다.
그가 말한 16강에 오르지 못한 주된 원인은 개인기술과 피지컬의 차이였습니다. 변성환 감독은 우리 선수들이 상대팀과 비교했을 때 1대1 상황(공,수)에서의 개인능력이 부족하고 피지컬(파워, 체격, 스피드)이 열세였다고 평가했는데 이는 제가 유럽에 있을 때 느꼈던 것과 동일합니다. 작은 차이지만 유럽, 남미의 정상급 선수들은 기술적으로 더 뛰어나고 1대1에서도 강하며 원시적인 피지컬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변성환 감독이 경험을 통해 체험한 기술과 피지컬의 격차. 그래서 손흥민의 어릴 적 훈련 모습을 보면 바로 이 부분에 집중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손흥민의 아버지인 손웅정 감독의 훈련 커리큘럼이 꽤 적합했던 거죠.(특히 아시아인에게 필요한) 훈련의 대부분이 기본기술의 연마와 스피드, 파워를 올리는 피지컬 훈련에 집중되어 있으니까요. 물론 축구는 팀 스포츠이기에 경기에 대한 이해와 경기 운영 능력도 필요하지만 손흥민의 경우 축구 지능이 타고난 것도 있고, 경기 운영 방법도 독일에서 잘 배워 지금의 손흥민 같은 선수가 탄생하지 않았나 싶습니다.